후기 인상주의 ( Post Impressionism )
영국의 미술 평론가 로저 프라이가 1910∼11년 겨울에 런던의 그래프론 화랑에서 기획·개최한 전시회인 '마네와 후기 인상주의전'이란 표제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어떤 특정한 예술 운동, 단일한 경향을 가리키는 말은 아니다. 세잔(Paul Ce`zanne, 1839~1906), 고갱 (Paul Gauguin, 1848~1903), 고호(Vincent Van Gogh, 1853~1890)가 추구해 온 회화에 있어서의 전위는 후기 인상파(post-Impressionism)이전의 미술에 대한 일종의 규칙성을 깨뜨림과 동시에, 화면에서의 표현을 보다 자유롭게 제시해 놓았다. 이들이 이룩한 화면에서의 자유는 공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탈피로써 시작된다. 그것은 색채의 해방과 형태의 데포로마시옹(Deformation)으로 부터 화면의 질서를 추구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들의 내면의 정신세계로부터 출발한 회화에 대한 새로운 이념이 오늘날의 미술에 있어서 새로운 문제점을 제시해 주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인상주의 전시 이후 파리에서의 생활을 마감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세잔은, 자연을 대상으로 그의 예술의 문제점들을 탐구하게 된다. 그는 빛에 따른 자연의 표정보다는 더욱 깊은 곳을 통하고 있는 견고한 실제 감을 파악하는데 창작의 열을 쏟는다. 그것은 물체의 세계에 깊이 내재되어 있는 형의 짜임새를 화면에 균일하게 질서화 시켜 구도를 단순화하여 갔다. 일반적으로 모네, 피사로, 시슬리등의 인상주의와 단순한 점묘주의로서의 신인상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전개된, 보다 견고한 화면 구성을 구하려 했던 경향과 표현 내용을 중요시했던 경향을 말한다. 여기에는 만년의 르노아르, 루소등의 화가도 포함되나, 가장 대표적인 화가로 세잔느, 반 고호, 고갱 세 명만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세잔느는 인상주의의 작품이 물체의 형태가 불꽃 속에 용해되어 공간 표현이 애매해지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물체의 실제감과 고전적 작품의 견고한 화면 구성을 구해서 입체파에의 길을 열었다.
고호는 정열적인 감정의 표현을 강하게 하여 표현주의의 선구가 되었다. 고갱도 상징주의적 색채를 짙게 띤 인간의 생과 사, 영적인 것등의 표현을 통하여 인상주의를 탈피, 그 순색의 넓은 색면에 의한 기법을 개발하여 야수파에의 길을 열었다.
고갱은 남방의 색채와 미개한 생활을 대상으로 판화, 목조, 유화 등 수많은 작품을 창작하게 된다. 2년간 머물면서 '타히티의 여인'등의 작품을 가지고 파리로 돌아 왔으나, 작품도 팔리지 않고, 평판도 좋지 않아 1895년 다시 타히티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나 작품을 제작하는 것 이외에는 궁핍과 병과 싸우는 생활이었고, 1901년에는 도미니크(Dominiqui)섬에서 생을 마감한다. 고갱이 남긴 작품은 이국적인 인간 환경을 그린 최초의 근대 화가임은 물론, 그의 작품에 빛나는 색채와 단순화된 인물의 평면성은 고겡의 특색을 보여주고 있다.
인상주의에서 일단 발전하여 그 개성적인 표현 방법을 확립하고, 다음의 20세기 회화의 발전을 준비한 이들 화가들을 일괄한다는 점에서 이 후기 인상주의란 말의 의의가 있다.
개봉동입시미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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