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상주의 ( Neo-impressionnisme : 新印象主義
)
쇠라 / 아니에르에서의
물놀이 /
1884 / 캔버스에유채 / 영국
런던 국립미술관 소장
즉, 그림물감을 팔레트나 캔버스 위에서 혼합하지 않고 망막(網膜) 위의 시각혼합으로 필요한 색채를 얻는 방법이다. 예를 들면, 청색과 황색의 작은 점들을 수없이 배열해나가면 시각적으로는 녹색으로 보이는 따위이다. 또한 형태나 구도에서는 ‘황금분할(黃金分割)’ 등을 자주 사용함으로써 고전적인 회화에서처럼 안정성을 찾으려 하였다. 이와 같은 특징을 대표할 만한 작품이 쇠라의 《그랑드 자트섬의 일요일 오후》 (1886)와 시냐크의 《펠릭스페네옹의 초상》(1990)이다.
인상주의가 사용한 기법을 과학적으로 더욱 발전시키면서도 동시에 인상주의의 경험주의적 사실주의에 대한 반발, 고전주의적 정신의 부활을 꾀한다는 기치 하에 쇠라가 1884년 5월의 앵데팡당 전에 출품한 「목욕하는 사람들」을 보고 비평가 펠릭스 페네옹이 신인상주의라 이름붙였다. 쇠라는 거기서 시냑을 만나 함께 '앵데팡당 미술가 협회'라는 새로운 그룹을 만들었다.
점묘주의 혹은 분할주의는 신인상주의가 사용하는 독창적인 테크닉의 기반을 이루는 것으로써, 캔버스에 색칠을 해 나갈 때 순색만을 사용하되 이를 일체 뒤섞지 않으면서 작은 점으로 찍어나가는 방법을 말한다. 이 경우 색조의 순도는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보는 이의 망막위에서 중간색이 형성되는 효과를 낳게 된다. 이 방법은 와토, 들라크루아, 터너 등이 이미 사용하였으며 인상주의자 중 르노아르가 최초로 사용했다.
쇠라등의 신인상주의 화가들은 이러한 기법을 좀 더 과학적으로 발전시킨 자신의 기법에 '점묘주의' 대신 '분할주의'라는 용어를 더 어울리는 것으로 생각했다. 1887년부터 1891년 사이 쇠라는 과학적 이론들을 과학적이고 정서적인 선과 색조로 환원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해 나가면서 전통적인 아카데미 이론과의 접목을 시도하기도 한다.
색채 분할등 인상주의의 기법을 더욱 체계화시키는 동시에, 신인상주의자들은 인상주의자들의 경험주의적 사실주의에 정면으로 대비되는 정신, 즉 그림이란 신중하게 고려되고 계획될 수 있으며 과학적으로 계산된 효과가 예견, 지향될 수 있다는 사고를 도입시켰다. 세잔느와 더불어 쇠라가 현대 회화의 혁신적 인물로 취급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신인상주의는 뤼스, H.크로스, D.피에, C.앙그랑, 리셀베르크 등의 동조자를 얻는 한편, 고흐, 고갱, 피사로 등에게도 한때 영향을 주었다. 또한 조형이론의 존중과 거기에서 찾아볼 수 있는 지성주의 및 구도나 형태의 기하학성 등 여러 특색은 20세기의 큐비즘과 오르피즘, 추상회화 등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 회화운동의 이론을 체계화한 시냐크의 저서 《들라크루아에서 신인상주의까지》(1899)가 있다.
쇠라 ( Georges Pierre Seurat : 1859.12.2~1891.3.29 )
신인상주의미술을 대표하는 프랑스의 화가. 파리 출생. 1878년 파리의 관립미술학교에 입학하여 앵그르의 제자 H.레만의 지도를 받다가, 다음해 지원병으로 입대하여 브레스트의 해안에서 병역을 마쳤다. 파리로 돌아와서는 고전 작품을 연구하고 소묘에 힘을 쏟는 한편, 셔브뢸, 헬름홀츠 등의 색채학과 광학이론을 연구하여, 1881년경 들라크루아의 작품의 색채대비와 보색관계를 해명한 글을 발표하여 세인의 관심을 모았다. 이러한 이론을 창작에 적용하여 점묘(點描)화법에 의한 최초의 대작 《아니에르에서의 물놀이:Une Baignade, Asni뢳es》(1883∼1884)를 완성하였는데, 이 작품은 1884년 살롱에 출품하여 낙선하였으나 앙데팡당전(展)에 출품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일을 인연으로 평생 화우(畵友) P.시냐크와 사귀게 되었다. 1885년 《그랑드 자트섬의 일요일 오후》를 제작하여 다음해에 열린 인상파 최후의 전람회에 발표하였다. 이것은 전작(前作)의 수법을 한층 더 발전시켜 순수색의 분할과 그것의 색채대비에 의하여 신인상주의의 확립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이 밖에 《포즈를 취한 여인들:Les Poseuses》(1888) 《기묘한 춤 Le Chahut》(1889∼1890) 《화장하는 여인》(1890) 등의 작품이 있다. 모두 인상파의 색채원리를 과학적으로 체계화하고 인상파가 무시한 화면의 조형질서를 다시 구축한 점에서 매우 의의가 있으며, P.세잔과 더불어 20세기 회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전염성 후두염으로 32세의 젊은 나이에 파리에서 요절하였다.
시냐크 ( Paul Signac : 1863.11.11~1935.8.15 )
프랑스의 화가. J.P.기요맹의 제자. 파리 출생. C.모네의 작품을 보고 감동하여 화가가 될 뜻을 세워 1883년 20세 때 아카데미 리브르 드방에 들어가 인상파의 화풍을 익혔다. 84년 제1회 앙데팡당전에 처음 출품하고, 그때 출품된 G.쇠라의 작품에 공감하여 그와 친교를 맺고부터는 색채의 동시대비의 이론과 기법을 연구하여 그 성과를 86년의 인상파 최후의 전람회에 쇠라와 함께 발표함으로써, 신인상주의의 기치를 선명하였다. 그의 작풍은 과학적 점묘주의에서 나중에는 쇠라의 점묘보다 큰 점을 이용한 모자이크풍의 묘사법으로 변화했는데, 풍경화가로서 각국의 바다 풍경, 특히 프랑스 각지 해항(海港)의 풍경그림에 특색 있는 작품이 많다. 앙데팡당전의 창설자의 한 사람이며, 1908년부터 종신토록 앙데팡당전의 회장을 지내면서 청년화가들을 격려하였고, 신인상주의의 바이블이라고 일컬어지는 《들라크루아로부터 신인상주의까지:De Delacroix au Neo-impressionnisme》 (1899) 등의 저서를 남기는 등 생애를 신인상파 지도자로서 정열적으로 활약하였다. 주요작품에 《마르세유항의 풍경》(1905) 등이 있다.
개봉동화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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