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예술(行爲藝術:Perform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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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미술의 관념 등을 보다 구체적으로 육체 그 자체를 통하여 실행하는 예술이다. 1960년대 중반 이후 특히 뉴욕을 중심으로, 형식주의 모더니즘에 대한 반발의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즉, 클레멘트 그린버그나 마이클 프리드적인 모더니즘론에 대한 대항의 논리를 구축하려는 일련의 움직임들이 그것이었다. 모더니즘 미술이란 " 개별예술이 매체적 자기정의를 향해 점진적으로 환원되어온 과정" 이라고 규정한 그린버그의 주장과, " 예술작품은 일상의 사물과는 그 존재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작품의 질과 가치개념은 개별예술 안에서만 가능하며, 나아가 예술작품의 평가는 현실의 시간 속(현존성presence)에서가 아니라 비시간적인, 영원하고도 총체적인 현시성(presentness) 속에서 찾아져야 한다는 프리드의 이론을 주축으로 하고있는 형식주의 미학이다. 이러한 모더니즘론을 극복하기 위하여 작가들이 취한 전략은 1960년대 후반에 들어서 다양하게 나타났다.
개별장르의 구분을 고의적으로 위반한다든가, 모티브의 무의미한 단순반복을 통하여 합리적/상관적인 작업에 대항한다든다가(미니멀리즘), 작품을 아이디어나 제안의 형태로 탈-물질화(De-materialism)하여 작품을 " 구매단위인 상품의 위상" 으로부터 건져내는 일(개념미술) 등은 바로 모더니즘의 자기환원/자기정화의 원리를 넘어려서는 미니멀 작가들과 개념미술가들의 공통된 노력들 이었다.
이들 미니멀/개념 미술작가들은 다음 세대의 작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게된다. 즉, 막강했던 모더니즘론에 대한 컴플렉스를 제거하고 < 문화적 감옥> 인 미술관의 문을 활짝 열어제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다. 미술관을 벗어난 그들의 '현장'은 바로 자연(대지)과 그들의 신체(행위)였다.
실행·연기·연주 등의 어학사전적 의미에서 볼 수 있듯이 이야기체미술, 거리작업, 신체미술 등으로 다양하게 불린 70년대의 행위예술인 퍼포먼스는 그들의 예술적 매체로서 자신의 신체와 여기서 비롯되는 행위를 사용한다. 즉, 예술가 자신이 자기작품의 주체인 동시에 그 대상이 된다.
회화·조각 등이 전통적인 장르개념으로는 충족할 수 없는 표현욕구를 퍼포먼스는 작가가 언제 어디서라도 원하는 시간만큼 직접 청중과 접촉하면서 자신들의 작품(행위)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비평가나 큐레이터/화상의 개입 없이 수용자들에게 보다 즉각적으로 접촉할 수 있게 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퍼포먼스는 미술을 사치품에서 시각적 소통 즉 아이디어와 행위의 전달수단으로 전환시키는 데 기여를 했으며 결국 예술범주의 확장이라는 -(예술)장르간의 경계 허물기라는- 탈모더니즘의 특징을 보여주었다.
인간의 원초적인 표현욕망을 연극적으로 표출한다는 차원에서 역사적으로 그 기원을 원시종합예술(ballad dance)로까지 소급할 수 있으며, 20세기 예술에서 그 전조를 미래주의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에서 발견할 수 있으나 1950년대 말에 해프닝이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으로 시도되었다.
1970년대의 퍼포먼스 아트 이전에 등장한 행위미술로는; 1950년대말, 특히 팝아트의 운동과 연관을 맺어 전개되었던 해프닝Happening (올덴버그와 앨런 캐프로우)이 있다. (올덴버그; " 해프닝은 움직이는 오브제를 사용하는 한가지 방법이며, 나는 사람들을 그 자체로서 그리고 움직이는 오브제로서 작품속에 포함시키기위 위해 해프닝을 이용한다" , 앨런 캐프로우; < 해프닝의성격정의 6가지> 중에서, " 해프닝은 일회적이어야한다" ." 해프닝은 일정한 시간과 공간에서 발달되는 우연한 사건들의 콜라주처럼 전개되어야 한다" )
해프닝에 이어 1960년대 이후이 많이 등장한 행위미술을 일컬어 사건이나 행사 등의 의미로서의 "이벤트Event" 가 있다. (해프닝이나 이벤트에 비해 1970년대 이후에 주로 불리워진 " 퍼포먼스" 는 인간의 신체적 행위에 의한 표현을 중시하는 면이 있으나 세 용어가 크게 구별되지 않고 혼용되는 것이 보통이다.)
퍼포먼스는 관객의 참여를 중시하여서, 관객없이는 이들의 작업/행위는 완성되지 않는다. 또한 즉흥성과 우연성을 적용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즉흥성과 우연성은 완전히 무계획적인 상태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의 퍼포먼스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와 치밀한 계획이 요구되어진다.)
해프닝의 선구적 사례로서 1954년 J.케이지가 가졌던 《4분 33초》란 전위음악연주회를 들 수 있는데 이 연주회는 4분 33초 동안 아무 연주도 하지 않은 채 공연장에 모인 청중들의 소음을 채집하는 것으로 끝난 행사로서 그가 62년에 나타나는 ‘플럭서스(Fuluxus)’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플럭서스란 흐름, 끊임없는 변화, 운동을 의미하는 중세라틴어로서 J.매키우나스에 의해 조직된 행위예술 단체인데 요셉 보이스, 백남준(白南準), 백남준과 함께 비디오 첼로를 협연했던 S.무어맨 등이 이 운동에 참가했었다. 해프닝은 연극의 형태로서 극장보다는 야외나 극장 이외의 장소에서 시연되며, 미리 기획된 연기나 즉흥적인 연기로 이루어지는데, 59년에 시도된 A.카프로의 해프닝이 이러한 예술의 출발점이었다고 할 수 있으며 Y.클라인은 60년 《인체측정술》이란 이벤트를 연출한 바 있고 70년대 이후 많은 작가들이 행위예술을 시도하여 이제 행위예술은 장르의 경계를 뛰어넘는 가장 보편적인 예술의 하나로 통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요셉 보이스는 예술과 삶의 격차를 철저하게 좁혀감으로써 인간성을 회복하고자 했다. 보이스의 작업의 주된 재료는 지방과 펠트 천과 구리 등이었는데(특히, 지방과 펠트천의 사용은 보이스의 2차 대전 당시의 사고에서 기인한다. 그는 비행기사고로 의식을 잃었었는데 타타르인들이 그들의 민간요법대로 -온몸에 지방을 바르고 이를 펠트천으로 감쌈- 그를 낫게한 것) 이는 일상의 맥락에서 쓰이는 각각의 재료들을 미술적 맥락으로 끌여 들여와 기의의 전도와 문명비판 등의 의미로서 작용한다. 대표작으로 < 지방의자> (의자와 지방의 일상적 의미의 전도와 지방의 유동과정이 주제)와 < 코요테> (아메리카 원주민을 식민화한 서구인에 대한 비판), < 어떻게 죽은 토끼에게 그림을 설명할 것인가> (전통 미술과 미술제도를 비판) 등이 있다.
한편 백남준은 간결하고 극적인 유머에 매료된 연예인처럼 " 꼴라주 기법이 유화물감을 대신 했듯이 브라운관이 캔버스를 대신할 것이다" 라고 말한 바 있다. 유명한 작품으로는, 여성 첼리스트 샬롯 무어맨과의 센세이셔널한 퍼포먼스로(무어맨이 전라로 연주)체포까지 되었던, < 오페라 섹스트로닉> 과 < 살아있는 조각을 위한 브래지어> 등이 있다.
이외 영국의 퍼포먼스 작가로 길버트와 죠지가 유명하다. 그들의 가장 잘 알려진 퍼포먼스인 1971년의 < 노래하는 조각> 에서 그들은 손과 얼굴에 금속성 페이트칠을 한 다음에 영국식 복장과 헤어스타일로 꾸민 채 테이블 위에 올라서서, 그들의 작품 이름대로 마침 태엽인형처럼 움직이면서 입속에서 가사를 웅얼거렸다. 이후에 그들은 커다란 크기의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성화적인 형태)을 통해 문명비판이나 동성애적인 주제를 담아내기도 했다.
대지미술과 퍼포먼스 간에는 외형상 큰 차이가 있는 듯하지만, 사실 70년대에 이들 작가들은 공통의 목표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미술관의 문을 열고 그곳에 자연과 일상을 데려오는 일, 혹은 미술관의 벽을 허물고 일상 속의 사람들과 만나는 일이었다. 격리된 공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이미 제도화되어 버린 미술계의 기재들에 반항하는 것, 그래서 제도와 모더니즘적 담론 자체를 바꾸어버리는 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개봉동화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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